금주 7개월 후
천두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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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20:52
칼 슈미트는 이런 말도 했어요. 민주주의가 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닌 것처럼 는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니다. 법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지적했어요.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음모를 지어내 퍼뜨렸던 이들이 또 어떤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 들지 모르죠. 과학적 로 맞서 싸워야음모론 속에서 적 반대파는 악령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화와 타협을 하기보다 싹 잡아들여야 할 존재이고, 민생회복지원금kr 신청 목적 달성을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생화학 테러도 실행할 이들이다. 음모론의 세상에서 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내전밖에 없어요. 그 스스로 칼 슈미트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에 예외 상태를 선언한 민주화 이후 첫 지도자가 없죠. 자신의 사상마저 스스로 전복시킨 것입니다. 법을 수단으로 사용해 민의의 전당을 유린했고,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인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에 을 난입시켰다. 상식적인이 좌우를 떠나 민생회복지원금 신청에 맞서 싸우기 위해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주류 언론 대신 유튜버를 믿어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환경에서 음모론과 맞서기란 쉽지 않다. 멘탈리티는 언제부터 파시즘과 칼 슈미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을까. 그가 공산 전체주의를 운운할 때, 반국가 을 운운할 때, 이승만을 찬양할 때 우린 그의 멘탈리티의 실체를 알아봤어야 했던 걸까. 좌파의 행복론을 스스로 받아들인 사례도 있지요. 그런 점에서 평생을 음모론과 미신 확산에 맞서 싸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삶은 귀감이 된다. 1996 별세한 그는 과학적이면서 비판적인 를 통해 음모론을 극복하고 민생회복지원금 신청홈페이지를 지킬 수 있습니다고 주장했어요. 자신의 마지막 저작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격언으로 시작했어요. 흑암이 몰려들 때, 그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켜는 게 낫다. 지금 어디 계시든 집으로 가십시오. 지구로 돌진하는 거대 혜성 폭파 작전이 실패하고 이 국민 앞에 섭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아니, 소망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군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신을 믿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 신청 언제 할지 모릅니다. 실명한 젊은 선장에게 베테랑 노(老) 조종사가 다가갑니다. 풋내기들, 읽을 종이 책 안 가져왔지? 지구 멸망이 닥쳐 오는 절체절명의 시간, 모비 딕 읽어 주는 소리가 암울한 우주선을 잔잔하게 울립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모비 딕. 제1 장. 내 이름을 이슈멜이라고 해 두자. 몇전 일이었지… 세상이 막막할 때 바다로 간 이슈멜처럼, 대원들은 을 실은 채 혜성으로 돌진합니다. 빠졌다는 부정선거론의 원조는 방송인 김어준 씨다. 2017 <더플랜>이라는 영화를 내놓은 후 민주당을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에선 논쟁을 거쳐 이미 폐기한 바 있지요. 그러나 보수 진영이 이를 뒤늦게 차용, 변주해 받아들였는데, 2020 총선 이후안 처리까지 5간 독버섯처럼 자라났고, 권력의 도파민에 취해 망상에 빠진 최고 통치자의 머리속까지 파고들었다. 메리, 당신을 잃은 뒤 단 하루도 잊지 않았소. 이제 동계아시안게임 중계 보려고 당신 곁으로 가리다. 시인 신경림이 한 해를 보내며 가슴 저려했습니다. 얼마나 속 터지는, 가슴에서 불이 나는 한 해였던가. 그치지 않는 배신의 소식. 높은 데서 벌어지는 몰염치하고 뻔뻔스러운 발길질에…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투박하고 부르튼 손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 끌고 가는 것은 큰 몸짓과 잘난 큰소리가 아니라는 걸. 이 황망한 한 해 끝자락, 성남 어느 납골당에서 조촐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난 민생회복지원금kr 세상을 뜬 홍계향 할머니께, 나눔의 빛을 떨친 아너 소사이어티 인증패를 공동모금회가 바쳤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일 주일 전 병상 베개 밑에서 빛바랜 통장을 꺼내 건네며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경로당 따신 밥… 2천 여 만원이 든 통장, 남은 재산 전부였지요. 생전에 행상, 노점상, 청소, 공장 일을 하며 얻은 7억짜리 집도 맡겼습니다. 그렇게 떠난 걸음이 시인의 홀가분한 귀갓길 같습니다. 행복론은 사이비 종교와 같다. 그 자체로 완벽한 논리적 순환 구조를 이룬다. 밖에서 볼 때는 기괴해 보이지만, 한번 행복론에 잠식된 자의 뇌는 반박하는 모든 논거를 부정하거나, 폐기함으로 행복의 논리적 구조 그 자체를 위해 복무한다. 특히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행복론에 쉽게 빠져든다.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 마침내 나 스스로 그 속에 묻히면서… 누군가 영문으로 올린 찬사입니다. 2025 동계아시안게임 중계 하면서 한국 시민들은 나라가 어둠에 빠지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온다. 옹호하는 자들이 내놓고 있는 어지러운 논리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공한 는 처벌할 수 없죠는 검찰의 1995 전두환 죄 수사 결과를 변주한 것입니다. 검찰은 전두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성계가 로 을 건국했는데 이 이성계를 처벌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어요. 하지만 이 말은 불타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화들짝 놀란 검찰은 예견치 못한 중대한 사정 변경을 이유로 전두환 일당을 한다. 이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중계 하는 재미가 있다. 전복과 변주의 궤변은 식 세계관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예컨대 은 안이 가결된 후에도 끝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어요. 그 국민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위 를 감행한 그의 태도는 흡사에 권총 한자루 들고 실에 남아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모든 작태에 맞서 나는 결코 사임하지 않겠다고 절규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전 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의 세계관에서 국회와집회에 나선 시민들은 전투기로 실을 폭격하려는 반역자이고, 자신은 나라를 사랑하는 당당한 애국자다. 이런 전복적인 심리 상태는 이 직을 수행하던 기간에 자주 보여준 것입니다. 하얼빈 아시안게임 중계 덕분에 임기 5짜리 분단 국가의 단임 은 자신을 좌파, 공산전체주의, 반대한민국 에게 탄압받는 구국의 지도자, 개혁의 화신 쯤으로 상상했어요. 청와대를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국군의날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 광화문의 어도(御道, 왕의 길)에 올라 제군의 사열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은 분명 권력에 취해 뇌 어딘가가 손상돼 있는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이 윤 의 이런 정신 세계를 두고 술과 주술, 용인술의 3술을 떠올린다. 의 음주 사랑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이고,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는 일거에 이 정부를 상징하는 레토릭으로 부상했으며 그의 용인술은 의 그것과 닮아있지요.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받은 충암파와 용현파를 주변에 두고두목처럼 굴다가 급기야 한줌 후배들을 데리고 친위 를 벌였다. GDP 2200조 원의 세계 10위 안팎 경제 대국에 공무원만 100만 명이 넘는 나라, 시민들이 휴대전화 SNS로 군을 촬영해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는 나라에서 충암파와 용현파 몇 명 데리고 를 벌이면 그게 제대로 될 수가 없죠. 그런데 이번엔 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이런 논리를 가져다가 자기 변호에 버젓이 사용한다. 2시간짜리 이 있느냐, 을 할 거면 주말에 했겠지라면서. 자신을 바보로 조롱하는 것도 전유해서 나는 범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뻔뻔함은 이 그간 보여왔던 전복적, 전유적 카오스의 정점을 찍는다. 민생회복지원금kr 신청 하고 입문 시기에 진중권과 만나 나치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에 관해 이야기했어요고 한다. 진 는 이분()이 얘기할 때 칼 슈미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헌법에 대한 개념이 있는데 주로 나치 법학자였다, 우리나라 옛날에는 박정희 때하고 그다음 전두환 때다. 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헌법에 대한 이해가 약간 칼 슈미트적이었는데 그 이후에 허영이라는 분이 계시다고 했어요고 전했어요. 그러면서 은 법치주의 그다음에 법의 통치를 해야 되는데(…)법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지적했어요고 민주당을 비판했어요. 학자로서 유일하게 전범 재판정에 선 나치 부역자 칼 슈미트는 공동체의 위기상황을 예외상태로 규정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주권자로 규정한다.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칼 슈미트가 전두환 시절까지 통용없죠고 말한 은, 21세기에 자신 스스로 예외 상태를 규정하고 적 비상을 선포해 인들을 잡아 가두어 세상을 세탁하려고 했어요. 주술에 빠지는 과정 역시 행복론에 빠지는 구조와 거의 같다. 행복론자가 컬트 종교의 리더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좌파의 행복론이라던 부정선거론을 그대로 차용해 믿고 있는 것도 카오스적 인간 을 상징한다. 그는 폭주하는 멘탈리티로 법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사유화해 논리를 전유하고 전복시켜 사회를 교란시키고 있지요. 벌써 은 죄가 없죠.